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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불혹, 고3 딸이 생겼다?!

[웹소설]내 나이 불혹, 전전전전 여자친구의 장례식.

by 정보부족 202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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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살이 되면 죽고 싶어!"

"응? 갑자기?"

"지금까지 산 만큼만 더 살면 더이상 안 살아도 될 것 같아~"

"그것도 그렇네~ 20년이나 더 살아야되잖아? 지겹다 지겨워. 군대를 몇 살까지 미룰 수 있지? 군대 가기 싫다! 군대 가기 전에 죽어야겠어!"

"ㅎㅎ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한 번 더 겪는 건 너무하잖아~"

"...? 맞지맞지~"

 

항상 뱉은 말은 지키는 너였는데 

이 말까지도 지킬 줄은 몰랐다. 

 

 

내 나이 불혹. 

살면서 겪을 일들 중 대부분을 겪었고

이제 남은 건

지금까지 겪은 일들의 반복만 남은 나이.  

 

하지만 영정 사진에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이 놓여있는 건

이렇게 와서 겪어보니

지금까지 안 겪은 내 인생은 행운이었다고 생각된다. 

 

심지어 내 기억 속에 단 하나의 강한 추억을 남긴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미 늙었다고 생각한 내 나이. 

오늘 오는 길에 갑자기 떠오른

친구와 20살 때 나눈 대화처럼

나는 지금도 마흔 살이면 죽어도 괜찮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마흔 살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실제로 들어보니

아직 어린 나인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친구의 영정 사진을 흘깃 한 번 더 보고

상주를 향해 돌아섰다. 

아마 친구의 아버님이겠지. 장례식장 입구쪽 소파에서 소리내서 울고 계신 분이 어머님이신가.

그리고 그 옆에 어린 여자애가 서있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아버님과 같이 절을 받아주는 걸로 봐서는 

친구의 딸인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못들었는데. 

나한테까지 연락이 안왔겠지. 

남편은 어딨지? 

결혼을 일찍했네. 

뭐든 빠르구나 너는. 

 

갑자기 친구와 나 사이엔 존재하지 않는

친구의 19년의 시간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살았을까.

무슨 일을 했을까. 

연애는 몇 번이나 했을까. 

지금 남편과 결혼한 이유가 뭘까. 

출산할 때는 문제가 없었나?

그리고

우리가 했던 저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동창들과 한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하는 바람에 뭐 하나 물어보지 못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사라졌다. 

친구들 조부모님이나 부모님 장례식장에서는 느낄 수 없던

조용한 분위기. 누구 하나 함부로 입을 떼지 않는, 아니.

누구 하나 입을 뗄 수 없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 나서서 장례를 치르고 있는 가족들에게 설명할 사람이 없다. 

가족들은 지금 손님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조용한 울음 소리만 장례식장을 채우고

나는 이번에 단톡방에 들어왔을 뿐, 오늘 같이 온 동창들과 친분도 두껍지 않다. 

그리고 이제는 억지로 친한 척한다든지, 먼저 말을 건다든지 하는 일도 없다. 

쓸데없는 대화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저 여자애는 누구지?"

 

미친놈. 지금 상황에서 그게 제일 먼저 생각하고 꺼낸 화제냐? 

속으로 나도 궁금해하고 있었지만 그걸 입밖으로 꺼내는 건 나이를 어디로 쳐먹은거냐. 

 

"몰라, 근데 윤하가 결혼은 했던가?"

"나는 연락 받은 적 없는데?"

"너가 윤하랑 그렇게 친했냐? 마지막으로 연락한게 언젠데?"

"우리 졸업할 때?"

"그거 19년 전이야, 정신 차려"

"그럼 최근에 윤하랑 연락했던 사람 없어?"

 

하는 질문과 동시에 10개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이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역시나 인간은 단순해. 

나는 천천히 종이컵에 단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나도 너희랑 같아. 연락 한 적도, 받은 적도 없어."

"그래? 원호 말고는 연락할 만한 애가 누가 있지?"

 

아, 이 분위기에 이 순간에도 

수다를 떨고싶어하는 인간들이 있구나. 

항상 그렇지만 정말 정 떨어진다. 

 

"어, 희진이랑 애들도 왔다."

"아이고, 들어오기 전부터 운 애들이 있나보네.."

"충분히 그럴만 하지."

 

왔다, 내가 이 시덥지 않은 인간들과 지금까지 같이 있었던 이유. 

나에게 장례식 연락을 전달해주고

고등학교 동창들 단톡방 초대까지 해준 장본인. 연희진. 

 

20살이든 40살이든

사람은 자신들이 생각한 리더를 중심으로 일정을 짠다.

고등학교 동창 단톡방에서는 희진이가 리더.

아무래도 고3 때 반장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본인도 직접 리드 하는 걸 좋아했었지. 

이래저래 시간 조율하고 결국 2개의 선택지를 줘서 투표를 한 결과가

지금 2개 그룹으로 나뉜 방문이다. 

 

희진이 그룹은 우리 옆 테이블로 자연스럽게 왔고

눈 인사로 서로의 안부와 현재 상태를 체크했다. 

나는 희진이와 눈을 맞추고 살짝 왼손을 들어 인사를 건냈다.

장례를 알려준 감사의 마음을 담아.  

희진이도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내 인사를 받았다. 

 

역시나 희진이 그룹도 대화는 없었다. 

정말 할 이야기가 없다. 

 

"담배피러 갈건데 같이 갈 사람?"

"어, 그래. 갔다오자. 갔다올게?"

"그래그래, 편하게 다녀와"

 

담배 값이 오르고 금연 구역이 넓어져도

담배 필 사람은 핀다는 걸 이럴 때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내 자리에 있던 5명 중 3명이 담배를 피러 갔고

남은 2명은 화장실을 갔다. 

 

"원호야, 너는 같이 안가?"

"다녀와. 난 괜찮아."

 

고등학생 여자들도 아니고 화장실을 같이 가자는 건 뭘까. 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내 옆으로 누군가가 앉았다. 희진이였다. 

 

"어, 연락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갈 뻔했어."

"내가 너 연락처 찾느라 얼마나 고생한 지 모르지?"

"그러게, 어떻게 찾았냐?" 

"니 베프, 진태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있더라고. 그래서 진태한테 물어봤지."

"아니 근데, 이 새끼는 내 연락처를 줘놓고 나한테 알려주지도 않네."

"진태한테 윤하 장례식 때문이라고 이야기했거든. 그래서 그런가봐."

"아, 진태도 윤하 이름은 알겠구나."

"그래서 어떻게 된거야? 윤하."

 

나는 희진이를 의외라는 눈으로 쳐다보고 말했다.

 

"너도 나한테 물어볼 줄은 몰랐네. 나도 모르지, 당연히."

"당연한..가"

"나도 대학교 들어가고는 연락하지 않았으니깐."

"그것도 그렇겠네. 윤하 아팠던거 같아. 밖에서 애들 기다리면서 들은 이야기야."

 

역시 쇼파에서 울고 계셨던 분이 어머님이셨나보구나. 

 

"원래 몸이 안좋았었으니깐."

"그래그래, 저기.."

"애들 왔다."

"어, 그래.."

 

화장실을 갔던 애들과 담배피러 갔던 애들이 같이 들어와서

희진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반장하고 부반장이 오랜만에 무슨 회의라도 했어?"

"희진이가 나한테 알려줬으니깐. 고맙다고 이야기 했지."

"그래, 이제 자주 연락하고 그러자고."

"그래그래, 자주 연락하자."

"이제 일어날까? 너무 오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네."

"그래그래, 일어나자."

 

그렇게 우리는 자리를 일어났다. 아무래도 윤하와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단체로 이동하다보니 다들 힐끔힐끔 쳐다보는게 느껴졌고

아버님으로 예상되는 분이 분향호에서 나와 인사를 해주셨다. 

역시나 희진이가 자연스럽게 아버님과 말 몇 마디를 나누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인사를 한 후 각자 신발을 찾아서 신었다. 

 

"원호야, 나 신발 좀 가져다줘라. 너 바로 앞에 있어."

"그래."

 

라고 대답하고 친구에게 신발을 준 뒤 허리를 펴는데

아버님으로 예상되는 분과 내 눈이 마주쳤다. 

이미 희진이와 이야기가 끝나서 마중해주시는가 보다,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여 다시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

계속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윤하가 내 이야기를 했었나? 

아니, 이미 결혼까지 한 거 같은데 내 이야기를 왜했대?

근데 남편을 못찼아봤네. 

 

이런 생각을 하며 장례식장 입구로 올라왔다. 

친구의 어머님으로 보이는 분은 아직도 흐느끼고 계셨고

주변에는 친척분들도 보이는 상복을 입은 사람들과 안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먼저들 가, 나 화장실 좀 갔다가 갈게."

"그래그래, 다음에 보자."

"응, 연락하자고."

 

나는 화장실에 갔다가 천천히, 동창들이 모두 시선에서 사라질 때가 되기를 바라며 나왔다. 

친구의 어머님과 주변 분들은 아래 장례식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지금이 뭔가를 하는 시간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잠깐 앉았다 가고 싶어서 주변 의자에 앉았다. 

 

역시나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자리에 있는 건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잠깐 눈을 감고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풀어주던 중에

 

"이원호 씨?"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누가 여기서 내 이름을 부를 일이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친구의 아버님과 눈이 다시 마주쳤다. 

 

"이원호 씨?"

 

나는 일어나며 대답했다. 

 

"네, 제가 이원호 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안녕하세요. 저는 권용준입니다. 윤하 아빠되는 사람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나는 장례식 장에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는 편이다. 

결혼식 장에서는 이런저런 미사어구와 인사말들을 건내지만

뭔가 장례식 장에서는 그런 인사말조차도 상대방에 따라서는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지금은 그러고 있다. 

 

나는 아버님이 왜 날을 불렀는지. 아니, 굳이 나를 따라오셨는지도 의문이었기 때문에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기다렸다. 

윤하가 내 이야기를 할 게 있나? 20년 전에 사귄 사람 이야기를 굳이?

최근에 옛날 생각이 났었나? 아니, 남편도 있는거 같은데 뭔 이야기를 해?

역시 예측 불가하네, 권윤하. 

 

아버님은 나를 바라만 보고 계셨다. 

그런데 나를 평가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그저 바라만 보셨다. 

그게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뭐지, 나를 이렇게까지 볼 일이 있으신가?

내가 윤하한테 뭔 잘못을 했더라. 

워낙 많이 해서 뭔지도 모르겠지만 헤어지자고 한 건 그쪽이었다구요. 

 

"혹시 결혼은..?"

"아니요, 아직 못했습니다."

 

엥, 결혼? 내가 여기서도 결혼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마흔이 되도 언제 결혼하니부터 결혼 했니 안했니를 워낙 듣다보니

이제는 자동으로 답변이 나온다. 

뭔가 너무 빨리 답변한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뱉은 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요.. 혹시 명함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

"명함이요?"

 

하고 바라 본 아버님 눈빛은 너무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당연히 내 명함을 달라고 하는게 의아하고 이상했지만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네, 잠시만요."

 

나는 명함을 안가지고 다닌다. 

가끔 회사 주소나 이메일이 기억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1장만 내 지갑에 넣어두는데

워낙 오래되서 종이가 바랬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드린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한 장을 꺼내서 드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가진게 이 한 장밖에 없네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한 번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네."

 

이렇게 아버님은 다시 장례식장으로 내려가셨다. 

뭐지. 역시.

권윤하와 관계되면 이상한 일들이 생기는구나. 

윤하야, 너는 마지막까지 서프라이즈다. 

 

내가 모르는 너의 19년. 

만끽하고 후회없이 갔길 바랄게.